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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6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by 헹 202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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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박애주의자와 테슬라 에고이스트 중 무엇을 살 건가..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을 합친 힘은 조만간 수십억의 사람들을 고용 시장에서 밀어내고 자유와 평등까지 위협할 수 있다. 빅테이터 알고리즘은 모든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디지털 독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럴 경우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관함irrelevance(사회에서 관련성을 잃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는 뜻-옮긴이)이다. p13

자유주의 체제의 단점들을 논의하지만,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유독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성공적이고 쓸모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6

하지만 이 책부터가 사람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쓰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주기 바란다. 당신이 이 책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표현의 자유 또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p17

정보기술과 생명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은 경제와 사회뿐 아니라 신체와 정신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 인간은 바깥 세계를 지배하는 법을 터득해왔다. 하지만 우리 내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은 미미했다. 댐을 짓고 강을 막는 법은 알았지만 몸의 노화를 멈추는 법은 몰랐다. 모기가 귓속에서 앵앵거려 잠을 방해하면 모기를 잡는 법은 알았지만, 머릿속에서 생각이 외욍거려 밤잠을 설칠 때는 우리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죽이는 법을 몰랐다.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을 통해 우리는 우리 내부 세계까지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뇌를 설계하고 삶을 연장하고 우리의 생각도 임의로 죽이는 법까지 터득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데 훨씬 뛰어났다. 강 상류에 댐을 지어 흐름을 조작하는 것은, 그것이 더 넓은 생강태계에는 어떤 복잡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는 것보다 더 쉽다. 그와 마찬자기로, 우리 정신의 흐름을 바꿔놓는 일은 그것이 개인의 심리나 우리 사회 체계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지하는 일보다 쉬울 것이다. p26

그런 감정과 욕망이 비물질적인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한, 컴퓨터는 인간 운전사와 은행원, 변호사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욕망이 사실은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면, 이런 알고리즘을 해독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컴퓨터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p47

기술은 결코 결정론적이지 않다. 무언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신기술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 같고 경제적으로 수익성이 있어 보이더라도 정부는 규제를 통해 막아낼 수 있다. 가령,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술적으로만 보면 인간 장기 시장도 생겨날 수 있었다. 저개발국의 인간 '신체 농장'과 절박한 부자 구매자들의 거의 무한정한 수요라는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p67

국민투표와 선거는 언제나 인간의 느낌에 관한 것이지 이성적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이성적인 의사 결정의 문제라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혹은 그 어떤 투표권도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박식하고 이성적이라는 증거는 충분하다. (...) 그렇지만 좋든 나쁘든, 선거와 국민투표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 것이다. 느낌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과 도킨스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게 없다. p83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해야 했을 때 캐러먼 총리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어떻게 느끼십니까?"라고)

우리는 대체로 감정이 사실은 계산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산의 과정이 지각의 문턱 훨씬 아래에서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과 재생산의 확률을 계산하고 있는 뇌 속의 수백만 개 뉴런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뱀에 대한 공포나 성관계 상대의 선택 혹은 유럽연합에 관한 의견이 어떤 신비한 '자유의지'의 결과라고 착각한다. p86

현재 우리는 영화를 고를 때는 넷플릭스의 추천을, 길에서 좌/우회전을 선택할 때는 구글 지도를 신뢰한다. 하지만 무엇을 공부할지, 어디에서 일할지, 누구와 결혼할지를 선택할 때도 AI에 기대기 시작하면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의사 결정의 드라마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p99

한 가지 희소식은 최소한 앞으로 수십 년 안에 AI가 의식을 얻어 인간을 노예화하거나 멸종시키는 공상과학 같은 악몽이 현실로 닥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알고리즘에 점점 더 의존하긴 하겠지만, 알고리즘이 의식적으로 우리를 조작하기 시작할 것 같지는 않다. 알고리즘은 의식조차 없을 것이다. p118

평균적인 공작의 재능이 평균적인 농민보다 낫지 않았고, 그의 우월함이란 단지 불공정한 법칙, 경제적 차별에 힘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2100년에는 부유층이 정말로 빈민촌 거주자들보다 더 재능 있고 창의적이고 똑똑할 수 있다. 일단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실제로 능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좁히기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 두 과정이 합쳐지면 즉 AI의 부상과 생명공학이 결합되면 인류는 소규모의 슈퍼휴먼 계층과 쓸모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의 하위 계층으로 양분될 수 있다. p126

만약 모든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그 열쇠는 데이터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 데이터를 손에 넣기 위한 경주는 이미 시작됐다. 선두 주자는 구글과 페이스북, 바이두, 텐센트 같은 데이터 거인들이다. (...) 이들의 진짜 사업은 결코 광고를 파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아 우리에 관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p129

점점 더 많은 데이터가 당신의 신체와 뇌로부터 생체측정 센서를 통해 스마트 기계로 흘러들어 감에 따라, 기업과 정부 기관은 당신을 알고, 조종하고, 당신 대신 결정을 내리기 쉬워질 것이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신체와 뇌의 깊은 메커니즘을 해독하고 그것으로 생명을 설계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 엘리트가 그런 신과 같은 힘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 엘리트가 그런 신과 같은 힘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인류가 여러 생물학적 계층으로 갈라지는 것을 막고 싶다면,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가? 나의 DNA와, 나의 뇌와, 나의 생명에 관한 정보는 나에게 속하는가, 정부에 속하는가, 기업에 속하는가, 아니면 인류 공동의 소유인가? p132

데이터 소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일 수 있다. p134

저커버그는 2017년 2월 성명서에서 온라인 공동체가 오프라인 공동체 육성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이 말은 가끔은 맞는다. 하지만 온라인에 오프라인이 희생될 때가 많다. 또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리적 공동체에는 가상 공동체가 따라갈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따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아파 누워 있으면 캘리포니아의 온라인 친구들은 내게 말을 걸 수는 있어도 수프나 차를 주지는 못한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p141

어떤 신나는 일이 일어났을 때 페이스북 사용자가 직감적으로 하는 행동은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온라인에 올린 다음 '좋아요'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의 느낌마저 점점 더 온라인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p142

아마존과 구글, 애플 그리고 다른 기술 거인들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은 반복해서 탈세 혐의를 받아왔다. 온라인 활동에 대한 과세에는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글로벌 기업은 온갖 창의적 회계에 더 쉽게 연루된다. 또한, 사람들이 주로 온라인에서 생활하는 데다, 자기 회사가 사람들의 온라인 활동에 필수적인 도구를 제공한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오프라인 정부에 대한 납세를 회피하는 것조차 사회에 유악한 봉사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몸이 있고, 따라서 여전히 도로와 병원 하수처리시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탈세를 정당화하기란 훨씬 어려워진다. 어떻게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서비스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공동체의 덕목을 설파할 수 있겠는가? p144

페이스북과 다른 온라인 거인들은 인간을 시청각 동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열 손가락과 화면, 신용카드와 연결된 한 쌍의 눈과 귀를 가진 존재로 본다는 말이다.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결정적인 걸음은 인간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는 것이다. p146

하지만 그 격동의 20세기에도 전쟁 때문에 올림픽 대회가 취소된 것은 세 번뿐(1916년, 1940년, 1944년)이었다. 1980년에는 미국과 일부 동맹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고, 1984년에는 소련 진영이 로스앤젤레스 대회에 불참했다. 그 밖에 몇 차례 올림픽 대회는 정치적 폭풍의 한가운데에 놓이기도 했다(대표적으로 1936년 나치 베를린이 대회를 개최했을 때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이 이스라엔 대표선수단을 학살했을 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적 논쟁 때문에 올림픽이라는 대사업을 탈선하지는 않았다. p162

그러니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관전할 때는 이 대회가 표면적으로는 국가들 간의 경쟁이지만 사실은 놀랍도록 합치된 지구촌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국기가 게양될 때에도 우선은 국민적 자부심이 솟구치겠지만 인류가 그런 행사를 조직할 수 있다는 사실에 훨씬 더 큰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법하다. p165 (세계에는 하나의 문명이 있을 뿐이다)

현재 인류는 전체가 하나의 문명을 이루어 살며 모든 사람이 공통의 도전과 기회를 함께 맞고 있다. 그런데도 왜 영국인, 미국인, 러시아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집단들은 민족주의적 고립으로 돌아설까? 민족주의로 회귀하면 우리 지구촌 세계가 직면한 전례 없는 문제의 진정한 해법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은 인류와 전 생태계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현실 도피적 탐닉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널리 퍼져 있는 신화를 떨쳐내야 한다. 상식과는 반대로, 민족주의는 인간 정신의 자연적이고 항구적인 요소가 아니며 인간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도 않다. 172

전면적인 핵전쟁은 모든 국가를 무차별 파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는 일에서는 모든 국가가 동등한 지분을 갖는다. 반면에 지국온난화가 초래할 충격은 국가마다 다를 가능성이 크다. 어떤 나라는, 특히 러시아는 실제로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
마찬가지로, 화석연료를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문제에서도 어떤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외국에서 석유와 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해야 하는 중국과 일본, 한국 같은 나라들은 그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기뻐할 것이다. 반면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와 가스가 갑자기 태양력과 풍력으로 넘어가면 경제가 무너질 것이다. (...)
원자폭탄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즉각적인 위협이서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고 오래 계속 된 위협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환경을 고려하다가도 단기적으로 고통스러운 희생이 요구될 때마다 민족주의자들은 당장의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환경 문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된가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쪽으로 행동하기 쉽다. p186

인류가 대규모 협력에 의존하고 그 협력이 서로 공유되는 허구의 믿음에 기반을 두는 한, 종교와 의식과 의례는 중요성을 이어갈 것이다. (...) 많은 전통적 종교들이 보편 가치를 옹호하고 우주적 타당성을 주장해도, 지금은 근대 민족주의의 시녀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p211

어떻게 보면 테러범은 도자기 가게를 부수려는 파리를 닮았다. 파리는 너무나 미약해서 찻잔 하나도 혼자서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파리 한 마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술까? 파리는 먼저 황소를 찾아낸 다음 귓속으로 들어가서 윙윙대기 시작한다. 황소는 두려움과 분노로 미쳐 날뛰면서 도자기 가게를 부순다. 바로 이런 일이 9.11 이후에 일어났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황소를 자극해서 중동이라는 도자기 가게를 파괴했다. 이제 테러범들은 도자기 잔해 속에서 번성하고 있다. 세상에 성마른 황소들은 널렸다. p241

21세기에는 주요 강대국들이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뭘까? 한 가지 이유는 경제의 성격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경제 자산이 주로 물질이었다. (...) 하지만 21세기에는 그래서는 푼돈밖에 못 번다. 오늘날 주요 경제 자산은 밀밭이나 금광, 심지어 유전도 아닌 기술적, 제도적 지식으로 이뤄져 있다. 전쟁으로 지식을 정복할 수는 없다. (...)
원자폭탄이 개발되면서 세계대전은 승패과 상관없이 집단 자살을 의미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로 초강대국들이 직접 교전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p265

하지만 유대교가 유일신 사상에 공헌했다는 생각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좀처럼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유일신 사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사상 중 하나였다는 주장도 있다. (...) 유일신교가 한 가지 확실하게 했떤 일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편협하게 만들어 종교적 처형과 성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p286 (유일신 사상은 십자군과 지하드, 종교재판과 종교적 파별을 늘렸다.)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인간에게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지시한다. (...)
사람들은 누군가를 미워할 때 "신이 그를 미워한다"라고 말하고, 땅이 탐날 때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고 한다. 우리가 세 번째 십계명을 보다 성실하게 지키기만 해도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p298

나는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IS의 신, 십자군의 신, 종교재판관의 신, '신은 동성애자를 미워한다'라고 쓴 배너 속의 신을 생각한다. 반면 존재의 신비를 생각할 때는 '신'이 아닌 다른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다. p299

만약 자신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세계를 이끌기를 바란다면, 내가 던지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했지요?" 아무런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p322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p321)

인간 개인이 세상에 관해 아는 것은 창피할 정도로 적다. 더욱이 역사가 진행돼가면서 개인이 아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석기시대의 수립, 채집인은 자기 옷을 만들고 불을 붙이고 토끼를 사냥하고 사자를 피하는 법을 알았다.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은 훨씬 적다. (지퍼의 작동 원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물어본 실험) 이를 두고 스티븐 슬로먼과 필립 페른백은 '지식의 착각'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우리가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는 게 미미한데도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든 지식을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상학과 생물학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유전자변형농작물에 관한 정책을 제안하고, 이라크나 우크라나가 지도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정책을 두고 극도로 강한 견해를 고집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과 자기 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트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는 일이 거의 없다. p325

세상이 짜인 방식이라는 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무지 속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정작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진실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돼 있다. p337

근대 역사에서 최대 범죄는 증오나 탐욕이 아니라 무지와 무관심에서 더 많이 나왔다. 매력적인 영국 숙녀들은 아프리카나 카브리해 지역에는 발도 디뎌본 적이 없었지만,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주식과 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대서양 노예무역을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그러고도 오후 네 시가 되면 눈처럼 흰 각설탕을 차에 타서 즐겨 마셨다. 물론 각설탕은 지옥 같은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녀들은 몰랐다. p338 (인간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없고, 더욱이 인과관계를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정의감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1,000명의 사람들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 뉴스'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신도들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분노를 촉발)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종교의 효과나 그것이 품고 있는 자애로움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좋든 나쁘든 허구는 인류가 가진 도구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에 속한다. p351

코카콜라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건강한 젊은이들이 운동을 즐기며 노는 장면이 연상되나? 아니면 과체중의 당뇨 환자가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떠오르나? 코카콜라를 많이 마신다고 해서 젊어지지도 건강해지지도 않고, 몸매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만과 당뇨로 고생할 확률만 높아질 뿐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코카콜라는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해 자사의 이미지를 젊음과 건강, 운동과 연결시켰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이런 연관성을 믿는다.
사실, 호모 사피엔스의 의제에서 진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357

보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가령, 정말로 주의를 집중하면 돈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런 식으로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축구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그것이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시합 열기로 달아올랐을 때는 아무도 그것에 관해 묻지 않는다. 민족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마치면 민족은 정교한 교직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전쟁 도중에는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관한 궁극의 진실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신화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궁극의 진실을 요구하는가?
진실과 권력의 동반 여행은 어느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p363

이처럼 인격화된 생화학 기제들을 따라 라일리의 뇌를 깊이 들여다보는 동안, 그 어디에서도 영혼이라든가, 진정한 자아라든가, 자유 의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전체 이야기의 축이 밝혀지는 순간은 라일리가 자신의 유일한 진짜 자아를 발견하는 때가 아니라, 오히려 라일리라는 아이를 어떤 하나의 핵심과 동일시될 수 없으며, 그녀의 행복도 서로 다른 많은 기제들의 상호작용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때다. 영화 초반에만 해도 관객들은 라일리를 주도적인 캐릭터-노란색의 명랑한 기쁨이-와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것이 라일리의 삶을 망칠 뻔한 결정적인 실수였음이 드러난다. 기쁨이는 자기만 라일리의 진정한 정수라 생각하고 다른 캐릭터들을 윽박지른 끝에 라일리 뇌의 연약한 평형 상태를 무너뜨린 것이다. 결국 기쁨이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라일리는 기쁨이고, 슬픔이도, 그 어떤 다른 캐릭더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라일리는 모든 생화학적 캐릭터들이 다함께 갈등하고 협력하면서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p378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p391

그렇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4C', 즉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 communication, 협력 collaboration, 창의성 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393

앞으로 생명기술과 기계 학습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심층 감정과 욕망까지 조작하기가 점점 쉬워질 것이고, 그만큼 우리의 마음을 따르는 일도 점점 위험해질 것이다. 코카콜라나 아마존, 바이두 혹은 정부가 우리의 가슴에 연결된 조종끈을 당기고 뇌의 버튼을 누르는 법을 아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나 자신의 목소리이고 어떤 것이 시장 전문가가 주입한 내용인지 식별할 수 있을까?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우리 자신의 운영 체계를 더 잘 알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401

사실인즉, 우리는 지금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지금 알고리즘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사고, 누구를 만나는지 지켜보고 있다. 조만간 모든 걸음과 숨결, 심장 박동까지 모니터할 것이다. 빅데이터와 기계 학습을 통해 알고리즘은 우리를 점점 더 잘 알게 된다. 그리하여 이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되면 우리를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지만, 거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트릭스> 혹은 <트루먼 쇼>속에 살게 될 것이다. p402

"호크 에스트 코르푸스(hoc est corpus!, 이것은 몸이다!)" 그러면 아마도 그 빵은 그리스도의 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크 에스트 코르푸스"라는 라틴어를 몰랐던 까막눈의 농민들 머릿속에서는 그 말이 "호쿠스 포쿠스 hocus pocus!"로 와전됐고, 그 뒤 이것은 개구리를 왕자로 변하게 하고 호박을 마차로 바꿔놓는 강력한 주문으로 거듭났다. p426 (인간이 허구의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은 의식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의례와 의식이 거대한 장애물이다. 하지만 공자와 같이 사회의 안정과 조화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은 골칫거리일 때가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의례와 의식이야말로 최선의 동맹이다. p429

왜 인도 정부는 희소한 자원을 델리 빈민촌의 하수도 건설 대신 어마어마한 국기를 짜는 데 투입할까? 국가는 인도를 실체로 만들어주는 반면, 하수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p431

특정한 믿음을 위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신앙은 더 강해진다. 이것이 신비한 희생의 연금술이다. 희생적인 사제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아무것도 줄 필요가 없다. 비도, 돈도, 전쟁의 승리도. 그보다는 무언가를 없애면 된다. 사람들이 고통스런 희생을 감수할 정도의 호가신만 주면 그들을 덫에 걸려든다. p432

로미오나 베르테르처럼 사랑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희생 없이는 진정한 사랑도 없다는 것을 안다. 희생은 당신의 사랑이 진지하다는 것을 연인에게 확신시키는 방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 자신에게 당신이 정말 사랑에 빠져 있음을 확신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 자기희생은 극단적인 설득의 행동이다. p433

악의 문제는 악이 실제 삶 속에서는 반드시 추악하지는 않다는 데 있다. 악은 사실 대단히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 전통적인 기독교 미술에서는 사탄을 대단히 매력적인 정부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탄의 유혹에 저항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파시즘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파시즘의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보면 추악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다. p443

부처는 우주의 세 가지 기본 현상을 설파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 고통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음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어떤 영원한 본질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서 연결만 하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영원한 본질을 때로는 신이라 부르고, 때로는 국가, 때로는 영혼, 때로는 진정한 자아, 때로는 진실한 사랑이라 부른다. p458

오늘날 불교 국가인 미얀마의 인권 기록은 세계에서도 최악에 속한다. 불교 승려인 아신 위라투는 그 나라에서 반무슬림 운동을 이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무슬림의 지하드 음모에 맞서 미얀마와 불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는 날아가는 모기에 대한 동정심을 설교하면서도 무슬림 여성이 미얀마군에게 강간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웃으면서 "불가능하다. 그들(무슬림 여성-옮긴이)의 몸은 너무 역겹다"고 했다. p462

어떤 거대한 이야기에 직면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실체인지 상상인지 알고 싶다면 핵심 질문 중 하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p464

그러니 정치인이 신비로운 용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는 늘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거창한 말 속에 숨기는 방법으로 실제 고통을 위장하고 변명하려 들지 모른다. 특히 다음 네 단어를 조심해야 한다. 희생, 영원, 순수, 구원. 이 중 어떤 단어라도 듣게 되면 경보음을 울려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영원한 우리 민족의 순수함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지도자가 상습적으로 해대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각오해야 한다. 정신을 온전히 보존하려면 그런 지도자의 주문은 늘 현실의 용어로 바꿔 이해해야 한다. 즉, "병사는 고뇌 속에서 울고, 여성은 얻어맞고 야만적인 취급을 당하며, 아이는 두려움 속에 떨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p466

많은 사람들은 정신과 뇌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둘은 정말로 아주 다른 것이다. 뇌는 물질로 된 신경세포와 시냅스와 생화학 물질의 연결망이다. 정신은 고통, 쾌락, 분노, 사랑 같은 주관적인 경험의 흐름이다. 생물학자들은 뇌가 어떤 식으로든 정신을 만들고,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이 어떤 식으로든 고통과 사랑 같은 경험을 만든다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정신이 뇌에서 어떻게 발현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수입억 개의 뉴런이 특정 패턴을 이뤄 전기 신호를 발화할 때 나는 고통을 느끼고, 또 다른 패턴으로 발화할 때 나는 사랑을 느끼는가? 단서조차 없다. 따라서 설사 정신이 실제로 뇌에서 발현한다 해도, 정신을 연구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 뇌를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작업이다. p474 -헷갈리는 부분

"공짜로 무언가를 얻는 경우 당신이 상품이다." (...) 공짜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의를 포기하는 대신 낮은 품질의 정보를 얻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고품질의 음식과 옷과 자동차에 기꺼이 제값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왜 고품질의 정보에는 돈을 내지 않으려는 걸까요? p493





1. 제1부 중 4번 째 이야기인 <평등 -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차지한다>가 인상적이었다. 하라리에 따르면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산의 개념도 달라졌다고 한다. 고대에는 토지가 가장 귀중한 자산이었다면(하지만 지금도 부동산은 엄청난 자산이다..), 근대에 와서는 기계와 공장이 토지보다 중요해졌고, 21세기에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부상했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나라는 인간의 데이터가 스마트 기계로 흘러들어간다면 기업과 정부 기관은 나에 대해 알고, 조종하고, 나 대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의 생체 데이터를 취합하여 신체와 뇌의 깊은 메커니즘을 해독하고 그것으로 생명을 설계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현실적이라 겁이 나기도 했다. 몇 달전인가 어그부츠를 살까 싶어서 어그부츠를 몇 번 검색했더니 바로 다음날 인스타그램 광고에 갖가지 어그부츠들이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게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꺼림칙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일부러 검색하고 인스타그램이 나한테 추천해준 상품들을 둘러보는 이상한 상태에 이르렀다. 나의 이런 행동은 현명하고 동시에 멍청한 것 같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과 웃긴 동영상을 보는 댓가로, 어그부츠를 추천받는 댓가로 페이스북에 나의 데이터를 갖다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생체측정 시스템까지 일상에 완벽히 적용되고 나면 나 자신보다 구글이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내가 무슨 공부를 할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누구와 결혼할 지 선택할 때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구글의 선택이 더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2. 유발하라리의 책은 이로써 3번 째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책 속에서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연결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온 거지?'라는 생각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6장 문명에서 7장 민족주의로 넘어갈 때가 '와..' 하면서 감탄사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똑똑하고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3. 6장은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금의 문명 충돌은 합치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2020년 도쿄 올림픽만 떠올려봐도 놀랍도록 합치된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촌은 서로 다른 문명들로 가득해보이지만 이미 너무나 유사한, 공통된 삶을 산다. 예를 들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치료를 받고, 달러를 통용하고, 비슷한 국기를 가지고, 비슷한 국가를 부른다. '너는 나랑 다르고, 너희는 우리랑 다르다' 선을 긋는 행위는 그만큼 가깝다는 뜻이라는 걸 생각해보게 한다.

4. 7장은 민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 인류 문명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핵 전쟁,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아닌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선 첫째, 원자폭탄이 개발되면서 세계대전은 승패과 상관없이 집단 자살을 의미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후로 초강대국들이 직접 교전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핵 전쟁이 일어나면 지구촌 집단 자살이 될 것이다. 이는 절대로 한 국가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둘째, '민족주의적 고립은 십중팔구 핵전쟁보다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훨씬 더 위험하다.' p186 고 할 만큼 생태 붕괴는 더욱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나라인 일본을 바다에 잠기게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시베리아를 세계 최대의 곡창 지대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또 화석연료를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면 화석연료를 수입하는 중국, 일본, 한국은 웃겠지만, 석유 및 가스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가 무너진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기술적 파괴에서도 민족국가는 당면한 위협을 다룰 틀이 못 된다. 가령 미국이 인간 배아를 이용한 유전공학을 금지한다 해도 중국이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만약 그 결과로 중국이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된다면 미국은 자국 내 금지를 깨고 싶은 유혹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5. 9장은 이민(인종주의에서 문화주의로)에 대한 이야기다. 이민에 관련해서 많은 말들이 있지만 크게 3가지 쟁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이민 수용국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이민 수용을 의무로 보는가, 특전(호의)로 보는가의 관점 차이다. 둘째, 이민자들이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될 의무가 있는가? 그런데 그 나라의 문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내릴 수 있는가? 셋째, 이민자들이 완전한 사회 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개인의 시간 척도와 집단의 시간 척도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논쟁 밑에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 깔려있다. '이 모든 문화는 본질적으로 동등한가?'이다.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서구 문화는 고상하고 품위있으며 경제적으로 뒤쳐진 개발도상국 같은 나라의 문화는 하찮고 미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이것을 인종주의에서 문화주의로 옮겨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흑인들이 열등한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범죄율이 높은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흑인이 문제있는 하위 문화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들의 범죄율이 높은 거야라는 말은 흔히 오간다. 그럴 듯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모든 문화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여성 할례나 네팔의 차우파디 같은 악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또한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문화보다는 존중하는 문화가 훨씬 더 낫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듯이 어떤 특정 국가의 국민이 다같은 문화를 완전히 동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종주의의 가면을 벗은 문화주의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것에는 격렬히 공감하는 바다. (이 장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회 갈등 중 하나인 '지역감정'이 떠올랐다. 경상도 사람은 이렇고, 전라도 사람은 이렇고, 충청도 사람은 이렇고.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좁은 땅덩이의 한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선을 긋고 비난하는 게 매우 못마땅하고 싫다)

6. 15장 무지.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지식을 본인 것이라 착각한다(지식의 착각). 얼마나 공감되는 말인가. 예전에 1박 2일인가? 아무튼 강호동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강호동이면 지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때 대답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쨌든 나랑 비슷한 것 같다. 만약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나였으면.. 지금 아마 자전거를 겨우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절대 자동차는 못 만들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 인쇄된 책을 읽는 것, 노트북으로 독후감을 남기는 것, 넷플릭스 보는 것,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 하는 것, 심지어 내가 있는 집 조차, 이 모든 것들은 다 내 것이 아니다. 모두 다른 사람의 지식과 기술과 힘을 빌린 것이다. 그래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7. 평범한 일반인이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이 있을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21가지 문제(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 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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