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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Book #10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송효정 외 4인, 온다프레스, (2018)

by 헹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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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부제 : 화상경험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 : 송효정, 박희정, 유해정, 홍세미, 홍은전

출판사 : 온다프레스

출판일 : 2018년 11월 16일

 

 


통영 독립서점 '봄날의 책방'에서 산 책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포스트잇에는 '무엇이 나를 나이게끔 하는가?'를 묻는 질문이 적혀있었다. 내 얼굴은 일그러질 수 있고 내 신체는 없어질 수 있다. 내 돈도, 직장도,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내가 아니다. 그럼 과연 무엇이 나를 나이게끔 하는가?

 

 

'화상경험자'라고 부르는 이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화상경험자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됐다. 미국에서는 화상생존자로 부른다고도 한다. 화상 사고로부터 살아난 (견뎌낸) 생존자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경미한 화상 사고인 경우 생존자라는 타이틀이 너무 묵직해 '화상경험자'가 더 주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게 참 와 닿았다. 말 그대로 '화상을 경험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화상으로 인해 타버린 얼굴이나 몸의 흉터가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니고, 어디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고 그냥 단지 화상 사건을 경험했다는 것. 그리고 이건 너나 나나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 

 

 

대부분 사람들이 화상을 몰라요. 왜 모를까 생각해보면, 화상환자들이 다 집에만 있거든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대부분 사람들이 화상을 몰라요. 왜 모를까 생각해보면, 화상환자들이 다 집에만 있거든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아니면 모두 가리고 다녀요. 저희도 병원 가서야 화상환자가 그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정말 많은데 병원 밖에 나오면 보이지 않아요." 맞는 말이다. 나는 화상환자를 만난 기억이 없다. 정말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는데 가리고 있어서 몰랐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 이야기를 들으니 학교에 다닐 때 꼭 반에 한 두 명씩 특수 학급 친구들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근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장애인이 없다. 교육청 안에 복지 사업차 운영하는 카페에서 말고는 만난 적이 없다. 그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닐 거다. 송순희 씨의 말처럼 다 집에 있는 거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 책에서 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이다. 화상경험자들이 겪은 일들을 읽으면서 정말 열 받아서 욕이 나올 때도 있고 분에 못 참아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그중에서는 화상 흉터가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상 환자를 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지에서 죄악이 비롯된다는 게 이런 걸까? 화상환자들이 마음껏 집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눈동자 관리라고 생각한다. 화상경험자 아내 분의 인터뷰였는데 남편하고 밖에 나가면 자꾸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것이다. 본인도 사고 전에는 지하상가에서 화상 흉터를 가진 가방 가게 사장님을 힐끔힐끔 쳐다본 적이 었었다고 고백했다. 막상 그 일이 있고 나니 자신의 행동이 잘 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나랑 조금만 다른 사람이 있으면 자꾸 내 눈이 그쪽으로 향하는 걸 알고 있다. 악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악의가 없다고 해서 상처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다짐했다. 아무리 나랑 다른 사람이 보여도 절대로 힐끔거리거나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화상환자의 피부 성형이 왜 미용 목적으로 분류되는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되면 병원비의 1/3만 납부하면 된다고 한다. 적당히 집 있고 차있던 사람들은 다 포기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병원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초기 수술 이후 대부분 화상경험자들은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게 된다. 화상 부위가 아닌 다른 곳의 피부를 떼어내서 화상 부위에 덮어주는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인데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계속 자라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 수술이 성형외과에서 시행되기 때문에 미용 목적으로 분류되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진짜 말이 되나? 화상환자의 피부 성형이 어떻게 미용 목적이냐고. 누가 정한 건지 따져 묻고 싶다. 잘 생각해보라고 이게 미용 목적인지 치료 목적인지. 너무 비합리적이고 말이 안 되는 법이다. 이것 말고도 화상환자들이 겪는 경제적, 행정적 고통은 너무나 많았다. 개선이 필요하다.

 

 

이겨내는 힘

 

'제가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본 걸 딸하고 아내가 알게 됐어요. 둘이서 '아빠가 돌발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정신적으로 많이 지지해주자'고 다짐했대요. 그때부터는 저를 아기 다루듯 보살펴주려 했대요. 좀 낫고 나니까 그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정말 그런 수고가 있어서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주인공들은 사실 다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신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경제적 고통을 다 이겨낸(이겨내고 있는) 사람들. 공통점은 이 사람들 곁에는 지지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엄마, 아내, 딸. (그러고 보니 다 여자다. 정인숙 씨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여자가 다쳤을 때랑 남자가 다쳤을 때 대우가 너무 달라요. 만약 남편과 내가 상황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어요. 다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해봤을 거예요. 만약 남편이 다쳤다면, 당신 아들이 다쳤다면 어땠을까. 그럼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옆에 있었을 것 같아요.' 하는 장면이 있다. 정인숙 씨가 사고를 겪은 후 남편은 바람이 났고 부모님도 그녀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고통을 이겨낸 정인숙 씨가 정말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또는 강아지, 친구, 협동조합. 내 옆에 내 편이 한 사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특히 내가 힘들고 아플 때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는 것은, 아니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견뎌낼 힘을 준다. 

 

 

그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한 편으로 그 지지자들의 고통도 알게 되었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겪고, 고통스러워하고, 심각한 흉터나 장애가 생겼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현실에서는 끝이 없는 치료와 그에 따른 병원비가 기다리고 있다. 돈이 발에 치일 만큼 부자라면, 수술도 원하는 만큼 받고 최고급 1인 병실에서 묵고 간병인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게 그렇지 않으므로 지지자는 환자 옆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침대에서 생활하며 2시간, 4시간마다 깨서 환자를 돌봐주어야 하고 그들이 아파서 내는 썽과 짜증을 받아줘야 한다. 만약 그런 생활이 한 달만에 끝나면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끝이 없다. 정말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희 엄마가 어떤 사람이냐고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질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어... 그냥 약간, 당당한? 당당한 사람이요. 제가 머리를 모조리 밀고 엄마랑 같이 놀러 다녔어요. 저는 신경 쓸 것도 많았는데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즐겼어요. 나도 엄마처럼 당당하게 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읽고 엄청 많이 울었다. 사실 나영이 엄마 송순희 씨가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영이를 당당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송순희 씨도 처음에는 나영이가 기타를 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나영이 손만 보는 것 같고, 본인도 나영이 손만 보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영이를 밖으로 데리고 다니며 훈련을 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지나가면서 나영이한테 '괴물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붙잡아놓고 이야기했단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얘 기분이 어떨 거 같애? 사람을 앞에다 놓고 그렇게 얘기하면 기분이 상하는 거야. 얘는 그냥 다쳐서 흉이 생긴 거야. 근데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화가 나지 않겠니?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 일부러 나영이가 있는 데서 얘기하죠. 나영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 대하는 법을 직접 보여줬어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겠는가 어림짐작할 뿐이다. 다른 병, 장애도 마찬 가지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지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고통을 칭송하려는 게 아니라 쓸모 있게 만들고 싶어요. 우리의 기록이 이 고통을 줄이는 데 기여하길 바라죠.

 

이 책은 고통을 칭송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이 고통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자 쓴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난생처음 화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 같다. 화재 사고가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 사고가 있을 때 초기 응급 대처가 얼마나 중요한 지(화상 부위를 찬 물에 계속 데고 화기를 가라앉혀야 한다. '추워야 살아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알게 됐다. 기하학적인 수술비와 병원비가 든다는 것과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또한 초기 이후 수술은 대부분 성형외과에서 이뤄지는데 성형외과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미용 목적으로 분류되어 비급여 항목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도 알게 됐다. 화상경험자들이 어떤 시선과 차별에 부딪히는지,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어떤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지도...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지만 그래도 씨앗 하나가 심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사한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 줄 감상

몰랐던 세상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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