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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by 헹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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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싱아 =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미터 정도로 줄기가 곧으며, 6~8월에 흰 꽃이 핀다. 산기슭에서 흔히 자라고 어린잎과 줄기를 생으로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서 예전에는 시골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

 

 

-"너는 공부를 많이 해서 신여성이 돼야 한다."

오로지 이게 엄마의 신조였다. 나는 신여성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신여성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린 딸의 손을 끄집고 서울로 향하는 엄마는 무슨 심정이었을까? 그 서울이라는 것도 초가집에 겨우 세들어 사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적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배우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한 번도 빠짐없이 지원하고 응원해주었다. 작년에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엄마는 너무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할까? 엄마가 하고 싶었는데 못 했을 공부들이 생각났다. 성적이 좋았는데도 동생들이 너무 많아서 대학교에 갈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서 꼭 엄마가 원하는 공부 다 하고 대학교, 대학원 박사까지 시켜줘야겠다. (싫어하려나..ㅋㅋ)

 

 

-시골에 두고 온 우리의 뿌리와 바탕을 자랑스러워할 때의 엄마는 시골 와서 식구들에게 자기의 서울 사람됨을 은근히 과시하며 으스댈 때하고 똑같았기 때문이다. 시골선 서울을 핑계로 으스대고, 서울선 시골을 핑계로 잘난 척할 수 있는 엄마의 두 얼굴은 나를 혼란스럽게도 했지만 나만 아는 엄마의 약점이기도 했다. p71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p89

📎이 책에서 싱아는 '나'에게 자유, 자연, 고향을 의미한다. 그럼 나는 싱아 대신 어떤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그 많던 불량식품은 누가 다 먹었을까?..

 

 

-그러나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 깨어지기가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p105

📎과연 엄마가 몰랐을까? 엄마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해줬을 거란 생각도 들긴 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쁜 행동을 한 걸 알면서 넘어가주는 게 좋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한 번 정도는 눈 감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라면.. 근데 어른이라면? 근데 엄청 나쁜 행동이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밤바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은 사회주의 진영과 민주주의 진영의 점령이 반복된다. 그 사이 빨갱이로 의심 받은 '나'는 벌레의 시간을 보냈다. 잊어버리고 싶어서 미친 듯 몸부림치면서도, 문득 자신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감까지 들었다니 얼마나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p311

 

📎이 책과 후속작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쓴 계기가 드러나는 문장이다.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나에게는 교과서로 배운 역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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