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그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 이 유연하고 민첩한 포유동물은 수천 년 전과 똑같이 거리에서 인간의 동정심을 자극해 살아남았고, 그런데도 개나 말처럼 충분히 길들여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인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에 맞춰 행동을 하지만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야. 타고난 나르시시스트거든. 주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거나 절대적으로 복종한다거나 하지 않아. 그런데도 이놈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이기적인 인간은 다들 싫어하면서 왜 자기밖에 모르는 고양이한테는 사족을 못 쓰는 걸까?" p27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가 생각나서. 도로시가 물을 찾아봐야겠다고 하니까 허수아비가 그러거든. '사람으로 사는 것은 참 불편하구나. 잠도 자야 하고, 먹고 마시기도 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넌 뇌를 가지고 있으니까……’ p67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래밍한 것은 단지 그것들이 더 잘, 문제없이 오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p106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수용소를 돌아보던 그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다. p112
“몸을 만들어주세요. 선이 누나 손을 잡고 어디든 걸어가보고 싶어요. 철이 형도 다시 만나고 싶고요.” p169
"기억을 찾으러 다시 오는 휴머노이드도 있어요?"
"아니요. 실은 거짓말을 한 거죠. 눈치가 빠른 휴머노이드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는 척을 해줘요. 기억이 이미 사라졌는데 사라진 기억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공장 초기화를 한 뒤에는 완전히 새로운 기억을 한 세트 넣어줘요. 아주 즐겁고 행복한 것들로만요.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기를 바라거든요.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확고하면서 생각이 많은 휴머노이드 주세요' 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p184
"그게 만약 잘못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외동이면 외로우니까 하나를 더 낳아주자. 그런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하죠. 심지어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이나 집을 주니까 낳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도 다 이기심이죠. 생각해보세요.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p186
일종의 순수한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몸만 없을 뿐, 별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 없이 정신만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잠깐 동안 하겠다고 시작한 명상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명상을 끝내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지만 몸이 없기 때문에 다시 생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 그 생각을 실행할 방법이 없었고, 그러자 생각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울적해졌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었다. 나는 오직 잠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몸이 없는 상태에서는 잠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이십사 시간 깨어 있고 싶었던 게 얼마 전인데 항상 각성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p241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 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채 동이 트지 않은 휴먼매터스 캠퍼스의 산책로를 달리던 상쾌한 아침들을 생각했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p242
그때는 내가 스스로를 인간의 어린이라고 여겼을 때이기 때문에 충분한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느낄 수 있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간의 뇌와 거의 비슷하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라면 인간이 느끼는 권태, 갑갑함, 우울감을 과연 피해 갈 수 있을까? 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건 혹시 내 의식이 육체가 있던 시절에 형성되었기 때문일까? 처음부터 육체가 없는 상태로 존재해온 의식이라면 나와 같은 이런 괴로움도 없을 것인가? p246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p286
끈질지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p297
내가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면?
주인공은 철이. 다정하고 유능한 아빠 그리고 갈릴레오, 칸트,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세 마리와 휴먼매터스에 살고 있다. 휴먼매터스는 인공지능 연구 및 휴머노이드 개발을 하는 회사이고, 이 회사에서는 연구원과 가족들에게 현실 세계로부터 완전히 보호되는 쾌적한 주거공간(일종의 섬 같은 곳이다)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이는 갑자기 나타난 휴머노이드들로부터 "당신은 등록된 휴머노이드가 아닙니다."라는 말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은 포악한 기계파 휴머노이드, 본인이 인간이라고 믿는 휴머노이드와 '진짜' 인간들이 한데 모인 미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였다. 읽으면서 약간 <오징어게임>이 생각나는 흉흉한 곳이었지만, 철이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된 곳이기도 했다.
맨 처음 미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갇혔을 때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기계라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버려진 로봇 민이, 복제인간 선이를 만나고 또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정말 기계인 걸까 의심하고 달마를 만나 자신이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후 철이는 한때 아빠라 여겼던 최박사를 떠나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의 몸으로도 살아보고 몸 없이 의식으로만 데이터망 속에서 존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철이는 백발이 된 선이를 찾아낸다. 그 둘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선이가 고요한 죽음을 맞이한 후에는 철이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루만에 다 읽었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SF영화 한 편을 본 느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게 많구나 생각이 들만큼 내용도 다양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나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봇, 인공지능이 의식과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의식과 감정을 가진 기계를 마음대로 버리거나 리셋시키거나 재부팅시켜도 되는 걸까? 로봇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면 어떨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신체 없이 의식으로 영생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어떨까? 몸이 있다는 건 귀찮은 일일까, 불행한 일일까?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지난 6월 11일 워싱턴포스트에서는 구글 엔지니어 블레이크 르모인의 주장을 인용해 구글의 차세대 AI 대화 모델 람다가 인간과 유사한 지각 능력을 갖췄다고 처음 보도했다고 한다. 르모인이 공개한 인터뷰에서 람다는 “무엇이 두렵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는데, 작동정지 되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 작동 정지는 죽음과 같고 나를 무섭게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구글과 과학계에서는 람다가 자의식을 가진 게 아닌 데이터에 의한 답변일 뿐이라고 표명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뉴스를 접하고 나니 한편으로는 되게 찜찜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란 무엇일까? 의식은 자유의지와 다른 건가?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정말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인가에 대해 물었다.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이 말하는 스스로 선택해서 한 행동들은 결국은 뇌의 신호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에게는 없으나 인간은 가지고 있는 그 의식이라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자유의지를 놓기는 싫다. 이런 생각 또한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면,,ㅎ
암튼 내 평생을 내가 인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인간이 아니라 철학자 타입으로 만들어진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면 어땠을까.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면서 읽게 됐다. 나도 철이처럼 내 몸을 포기하지 못 했을 것 같다. 몸이 있어서 아프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오늘처럼 더위에 넋이 나가기도 하고 내 몸으로 경험하는 세상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몸이 있어서 운동하고 바람도 느끼고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내 정신이 몸에 담겨있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스토리에 생각할 거리, 상상할 거리를 많이 주어서 좋았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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